4) 인적 연망을 보여주는 자료들 ?
따라서 문서보관소에는 국방부 내 각 부서, 군사지역 혹은 군관구, 전선, 군, 사단, 각 부대, 군사교육기관, 군사과학연구기관, 여타 군사조직 및 1941년 이후 조직된 소련군 기업체들 등 각 기관들의 개별 문서군들이 소장되어 있다. 2. 置簿ㆍ記錄類 1) 義士契案 신안서사를 운영하기 위해 조직된 계의 계원 명단으로 갑자(1744)ㆍ을사(1785)ㆍ을축(1805)ㆍ병인(1806)ㆍ정축(1817)ㆍ무자(1828)년의 契案 6종이 남아 있다. 정축년(1817)의 것과 내용이 거의 비슷하나 일부 추가된 것이 있다. 성공회의 경우 일부 자료가 성공회대학교 성공회 역사자료실로 이관되었고 진천 성공회의 경우 남아 있던 문서가 몇 년 전 교회 이전과정에서 모두 소각되었다고 한다. 계속적으로 새로운 Office 기능을 사용하려는 경우 해당 기능을 포함하는 Microsoft 365(또는 Office 365) 요금제로 Office. 18. 조선인들이 최초로 함경도지방으로부터 쁘리모리지역과 쁘리아무르지역으로 이주한 과정과 1910년 일본에 의한 조선병합 이후 새로운 이주 물결에 관한 자료들. 21. 내각각료회의 폰드(Ф.1276)에는 러시아에서 중국인과 조선인 노동자의 노동력 사용조건에 관한 문제, 동시베리아에서 중국인 조선인에 대한 금광업 야금공업 석탄광업 진출 허용, 공업과 농업 분야에서 조선인 노동력 활용을 위한 노동자 수급, 극동에서 조선인에 대한 무역-산업 활동 진출을 제한하는 수단에 관한 문제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자료들. 17. 그림, 사진 기록물 자료들. 칠곡지역에서 수집된 사진 자료는 칠곡군 행정 관련 자료,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 농업기술센터 자료, 학교관련 자료, 성당 관련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문서보관소의 분류체계가 출처에 따른 분류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수집된 문서이건 국방부문서보관소 소장 문서이건 연구자의 입장에서 특정 주제별로 문서를 탐색․
2008년 경남 남해군 지역사 자료 조사 수집 사업으로 수집된 자료들이다. 지역사 연구가 당해 지역에서 역사형성 주체로 활동한 그 주민들에 의해 생산된 사료에 기초할 때에만 비로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와 관련한 자료로는 특히 ‘조선의 내부정세’, ‘여순항의 러시아 함선에 대한 일본함대의 침략에 관한 보고’, ‘순양함 바랴그와 포함 조선인의 일본함대와 전투상황 보고’, ‘극동에서 총독의 외교정책’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소문서군에 속해 있는 젤로(문서철) 가운데 ‘조선 항구들에 대한 군사 지리적 기록’, ‘청일전쟁에 관한 자료들’, ‘극동에서 우리의 상업보장을 위한 수단에 관해 뿌짜트 대령의 보고서’, ‘1897년 조선에서 러시아 교관활동에 대한 총사령부 뿌짜가 대령의 수기’, ‘마산포에서 러시아 해군기관을 위해 조차지 양도에 관한 조선과의 협약체결’, ‘조선의 농민봉기에 대한 보고’, ‘1897년 3월 서울의 정치상황에 대하여’, ‘1897년 11월 6일자 조선에 관한 총참모부짜트 대령의 보고서 사본’, ‘1898년 4월 13일 조선독립인정에 관한 러일 동의안 텍스트’ 등에 관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19. 내무성 총무국폰드(Ф.1284)에는 러시아 극동 변방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문제, 극동지역으로 이주민 억제 수단의 추진, 남동아시아 이주민들의 무역-산업 활동규정 등에 관한 자료가 있다. 이들 폰드에는 주로 해군함대의 설립, 조직, 활동, 범선 기선 전함과 해상무기의 축조, 항구 건설, 해양과학의 발전, 해양학과 함선의 변천, 해군학교의 교육, 러시아 군사력과 함대의 위상, 혁명운동과 해군 등에 관한 자료들이 산적되어 있다. 인천오피 폰드 안에는 개인전기, 재산목록, 직무 성격 이외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태평양 함대 군복무와 관련한 명령, 보고, 상신, 수기 등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정치 군사적 위상 강화, 광산업의 성립, 그 과제와 산지채굴에 외국자본의 영향, 러-일전쟁 기간의 전투행적 등에 관한 세밀한 자료들이 들어있다.
용산서원 자료는 일반 종가 고문서와 그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에 위에서처럼 구분하지 않고, 별도로 서원 자체의 건립과 운영에 대한 자료 73점, 그리고 동계ㆍ향약 등 마을조직의 운영에 관련된 자료 25점, 2가지 종류로만 구분하였다. B. Coulter에게 한국정부의 훈장이 수여되고, 서울 시 한복판에 그의 동상을 제막하게 되는 배경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이 폰드는 연대기적으로 1884년에서 1918년까지의 자료를 포괄하며, 크게 6개의 오삐씨(소문서군)로 구분되어 있다. 그 가운데 고암면을 대상으로 전쟁 관련 자료를 조사․ 러시아 국립해군함대문서보관소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보관소 가운데 하나로써 우리에게는 해군성문서보관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6. 무역-산업성 폰드들(Ф.20, 21, 23)에는 조러와 조일간에 무역관계 자료들, 조선에서 철도 발전에 관한 서울부영사의 보고서들, 항해에 관한 조선법률, 조선 각 항구들에 관한 기록물, 블라디보스톡과 조선 항구 사이의 선박 출항과 관련된 러시아 선박회사의 활동보고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러시아국가와 사회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 대외적인 정치, 경제, 문화 관계에 대한 자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1952-1954년 북한의 주요 지역에 대한 유격전(Parisan War)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관급학전이 있고 그 외 지방민들로부터의 징수 혹은 지방 유림의 임의 갹출로 부속된 토지와 임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인 11월 25일 이규조의 차남 李榮善은 오히려 6두락 중 앞서 방매한 3두락 외 나머지 3두락을 변오석에게 전문 90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서번호 중 최상위 단위인 문서군(фонд; ф.)을 보면 대체로 해당 문서가 소련군의 군령 및 군정 체계상 어느 부서 혹은 부대에서 작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서보관소 내 각 문서군(фонд)의 조직과 구성은 군 조직체계를 따르고 있다. 국방부중앙문서보관소에는 1943년 독소전쟁 개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소련군 내 각 부대, 기관 및 국방부에서 생산된 일체의 영구보존용 문서가 소장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 1970년대에 생산된 것으로, 1970년대에 실제 마을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한편 국내에 들어와 있는 국방부문서보관소 소장 한국관련 문서를 관련 주제별로 살펴보면, 개략적으로 ‘소련군의 대북한 정책’, ‘북한주민의 동향 및 정세’, ‘북한의 정당 및 사회단체’, ‘인민위원회’, ‘북한의 민주개혁’, ‘북한의 경제 및 산업’, ‘북한의 문화 및 교육’, ‘북한의 무력조직’, ‘남북관계’, ‘남한의 정세’, ‘북소관계’, ‘한국전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유림들의 인식은 의병활동이나 을사조약 당시 순절한 의사들의 추모사업, 나아가서는 명성황후의 추도사업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최고중앙기관, 함대 및 소함대 사령부, 함선, 군사항구와 해군기지, 과학연구기관, 해군사관학교, 조선회사, 해양학술탐험 등으로 명명되는 폰드들이 있다. 이들 폰드 수는 1,268개, 문서철의 수는 120만 개 이상에 이르고 있다.